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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편 - 永慕齋(영모재) -

 

소재지 : 경북 군위군 군위읍 정동 3리
건립연대 : 1969년() 건립
건립자 또는 연고자 : 淸齋 李光哲
건물의 입지 : 丘陵形
건물의 형태 : 단층의 평집
지붕 : 맞배지붕
건물의 모양 : 四角形
누정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칸수 : 정면 - 3칸, 측면 - 1칸
건물 보존 상태 : 양호
문화재 지정 현황 :

 

永慕齋 重修記

我入鄕先祖進士公旣登國庠若出而進取則或施其經綸之手而時値燕山君昏政遂絶意靑雲遯居于永川潛跡以沒世而冠屨之藏在此丑坐之原舊有丙舍爲齋宿之所而每年會奠時殆不免狹隘之歎久欲擴張而歲乙丑秋始發議着役榮泰及煥玉石柱三人以巨貲贊助當時有司三四人皆盡誠監董二年丁卯功告訖於是堂室廡門庫舍庖廚各得其便宜而執事者亦可以周旋矣告落後老少咸令不侫記其事窃嘗見家乘二十代祖秘書監公當麗末恭愍王朝見國運將訖退隱於原州雉岳山厥後四五世桑海大變應不免流離奔竄逮公之世避地于此而至今爲四五百載子孫之布濩鄕裡者爲數百戶類皆椎魯窘迫實不能念及於奉先之道今玆之後三君之贊助有司之監董能使諸族聳動如春雷一聲蟄虫驚起歷世未遑之業如是其輪突自玆以往鄕裡諸族爲能以六七人之心爲心則斯齋之久遠與否無足憂也畧書所感以諗于僉彦 戊辰 仲春 十五世孫 元杓 謹書


우리 입향 선조이신 진사공께서 이미 국상에 올랐으니 만약 출세하여 벼슬 에 나아갔으면 혹 경륜의 손을 세상에 폈을 것이다. 연산군의 혼조를 만나 드디어 청운의 뜻을 끊고 영천에 돈거하여 자취를 감추고 사시다가 돌아가시니 분묘는 여기 축좌의 산에 있다. 옛날에 재사가 있어 재숙하는 곳으로 삼았으나 매년 회전할 때에 협소한 탄식을 면치 못했다. 을축년 가을에 비로소 중수하기로 의논하여 착공을 하 였는데 영태 및 환옥과 석주 등 삼인이 거금을 내어 찬도하고 당시 유사 삼, 사인이 성의를 다하여 감독하여 이년 후 정묘년에 준공을 했다. 이에 당실과 무문과 고사와 포주가 각각 그 편의함을 얻어서 집사자가 또한 주선하기에 적당하였다. 낙성한 뒤에 노송종인이 나로 하여금 그 사실을 기록하라 함으로 가만히 생각건대 내 일찍 가승을 보니 이십대조이신 비서감공께서 고려말 공민왕 때 국운이 장차 다 하였음을 보고 원주 치악산에 은퇴하였으며 사,오세 뒤에 상전이 벽해가 되는 큰 변란에 아마 유리분찬함을 면치 못했으리라. 공의 세대에 이르러 이 땅에 피거하여 어느덧 사,오백년이 되어 자손이 고 을 속에 퍼져서 수백호가 되었으나 다 어리석고 우둔하며 생활이 궁핍하여 실로 생각이 봉선의 도에 미치지 못하였다. 지금부터 뒤로는 삼군의 찬조와 유사의 감독이 능히 모든 족인으로 하여금 솟아 움직이게 하기를 봄 우레의 한소리 같고 겨울잠을 깬 벌레가 놀라서 일어나는 것 같으리라. 역대로 미쳐 겨를이 없어 못했던 사업을 크고 아름답 게 이루었으니 지금부터 앞으로는 향리의 여러 씨족이 능히 예닐곱 명의 마 음을 마음으로 삼으면 이 재실의 구원여부는 족히 금실될 것이 없으리라. 간 략하게 느낀 바를 써서 첨언에게 고한다.
무진 중춘에 십오세손 원표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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