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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리(南致利)

 

남치리(南致利 ; 1534∼1580)의 자는 의중(義中), 호는 비지(蕡趾), 본관은 영양(英陽)이며, 안동(安東)출생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문과에 두 번이나 실패하고 자신의 수양을 위한 학문에만 열중했다. 30세 때인 1572(선조 6)년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문과에는 응하지 않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채 이황의 「이학통록(理學通錄)」과 「계몽전의(啓蒙傳疑)」원고를 정리하고 교정하여 간행하는데 힘썼으며 이러한 학행은 36세 때인 선조 12년 조정에서 뛰어난 선비 9인을 천거할 때, 높이 평가되어 정구(鄭逑)와 함께 최고 뽑히게 했다. 이와 같이 중앙과 지방으로부터 뛰어난 인물로 선망을 받았으나 38세로 요절함에 따라 더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시문이 뛰어나 「언행잡록(言行雜錄)」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노림서원(魯林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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