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문집
서원
누정

 

문집편 -鄒川集 -

 

 鄒川孫公遺集序

古者品第人 有但以名而列者 如八士夷逸朱張 是也 有以一事稱者 如樂正裘牧仲 是也 然後世不敢少之者 誠以名之列 必有其實 而一事又足見其平生也 今之欲傳其人者 務聚其言 裒蹟不多 則以爲歉也 俗之弊也 其或言湮而事逸 僅有一二在人耳目者 亦安可少哉 密州有鄒川孫先生 壬癸前人也 兵燹之後 言與事俱蕩然 獨有宰禮安 師事退陶夫子 退而與門下諸賢相友善一事 在邑誌與諸賢文集 然桐鄕後人 莫不尊之爲高足弟子 因以蹟其政先興學 誠切爲師 而又推之蔚山密州誌 則誠篤厚好學人也 又豈必多乎哉 一羽之彩 一臠之味 可以得其人焉 公歿而倭訌大作 懿蹟消滅 而子死於孝子婦死於烈 從子某倡義以著忠 一門之內 三綱炳然 此則吾知公當日所得於師友 而因而爲一家之政者然也 其視夫世之尙其辭 務爲多者 何如也 後孫振華 越四百里來 責以弁卷之文 不佞昏耄甚矣 辭之固而强之不已 凡三往返 念其事幾湮 而其蹟愈可敬 遂盥手書以歸之嘉善大夫 前兵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柳致明謹序


옛날에 사람을 품평하는데 단지 이름만을 가지고 나열하자면 팔사, 이일, 주장이 이런 경우이다. 한 가지 일로 일컬어진 사람은 악정, 구목중이 이 경우이다. 그런 연후에 세상에서 과소평가할 수 없었던 것은 진실로 이름만 열거했으나 반드시 실질을 가지고 있어서 한 가지 일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평생을 보기에 충분하다. 요즘 그 사람을 후세에 전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 말만 모으기에 힘쓰고, 행적을 모은 것이 많지 않으면 유감으로 여기니 습성의 폐단이다. 간혹 말한 것을 잃어버리고 행적을 잃어버려서 겨우 사람들의 이목에 있는 한 두가지만 있다 하더라도 어찌 작다고 하겠는가? 밀양의 추천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사람이다. 전재의 병화를 겪은 후에 문장과 행적을 모두 잃어버렸다. 오직 예안현령으로 있을 때, 퇴계선생을 사사하고 물러나서는 문하의 제현들과 서로 친하게 지냈던 한 가지일 만이 읍지와 제가의 문집에 실려 있다. 그러나 동향후인들이 뛰어난 제자로 존경하지 않음이 없고, 정치의 치적이 먼저 학교를 일으키고 성실과 절실함을 스승으로 삼고 추숭하였다. 울산지와 밀양지에서는 진실로 독실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기록하였으니, 어찌 꼭 많아야만 하겠는가? 한 깃털의 광채와 한 저름의 고기 맛으로도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이 돌아가시자 왜놈의 난리가 크게 일어나 아름다운 자취는 사라지고, 아들은 효를 위해 주고 며느리는 열을 위해 죽었고, 조카인 아무개는 의병을 일으켜 충성을 드러냈다. 한 집안에서 삼강의 도리가 빛났으니, 공이 당시에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가지고 한 집안을 다스리는 정령으로 삼아서 그러한 것임을 알겠다. 그 세상에서 그 문장을 숭상하여 많게 하기만 힘쓰는 사람과 비교해 본다면 어떠하겠는가? 후손인 손진화가 400리를 와서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혼미하고 늙음이 심하여 굳이 사양했으나 억지로 맡기기를 그치지지 않았다. 무릇 세 번이 왕복하다가 그 사실이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고 그 행적은 더욱 공경할 만하여 손을 씻고 써서 돌려 주었다. 가선대부 전병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유치명 삼가 서문을 쓰다   

 

돌아가기

Copyright ⓒ 2004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한자박사 편) All rights reserved.